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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ak Seo

에이전트의 최고의 도구는 ask다

/ 9 min read

Agent가 가진 최고의 도구가 무엇일까? bash? read? write? 나는 항상 주변 지인들에게 ask 도구라고 말하고 다녔다.

인간은 본인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단어 7개 정도를 겨우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알량한 두뇌로는 ‘뭘’ 만들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정의할 능력이 애초에 없다. 그럼 뭐가 남느냐면, ‘충동’ 혹은 ‘의도’가 남는다. “아 이거 뭔가 해결해보고 싶다”라거나 “이거 해서 예쁨받아야겠다” 같은, 감정의 방향에서 비롯된 날것의 의도만 남는 것이다.

그럼 이제 이 날것의 충동을 예쁜 기획서, 플로우차트, 코드로 옮기는 지난한 과정만 남았는데, 보통은 이 단계에서 메모장, 공책, 도화지 등을 꺼내서 낑낑대던 것이었다. “아, 누가 나를 인터뷰해서 나도 모르는 내가 원하는 걸 하나씩 뽑아내주면 정말 좋을텐데.” LLM 이전에는 이걸 오직 사람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에이전트라는 이름으로, 하루에도 몇십 번씩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출해주는 기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모든 전문가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적절한 질문으로 고객이 본인도 모르는 본인의 욕구를 추출해내고, 그걸 전문 지식과 결합해 적절한 산출물로 제공하는 것. 예를 들어 변호사는 각종 서류들을, 의사는 처방전을, 개발자는 코드를. 그러니 에이전트의 행위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일종의 번역기인 셈이다. 날것의 의도라는 언어를 실행 가능한 결과물이라는 언어로 옮기는 번역기.

이렇게 보면 전문가 집단이 AI 시대에 대체 압력을 특히 크게 받는 이유도 설명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전문가의 부가가치 중 상당 부분은 바로 이 ‘번역’ 과정에 붙어 있었다. 고객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전문가는 그걸 물어서 뽑아내고, 자기 지식과 섞어서 산출물로 내놓는다. 이 파이프라인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면, 그 경제적 임팩트는 클 수 밖에 없다. 고객 입장에서는 전문가에게 시간당 20만원을 내던 걸 월 20달러에 해결할 수 있다면? 당연히 대체 압력이 클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전문가를 자처하는 신세에서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를 생각해보자. 평생 ask를 잘하는 걸로 먹고 살던 전문가들은 이제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가.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는 ask 도구라는 게 결국 ask 시키는 사람의 입력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번역기도 원고가 엉망이면 걸작을 뽑아낼 수 없다. 던지는 질문의 해상도가 낮으면 돌아오는 결과물도 흐릿하다. 반대로, 내가 뭘 원하는지 선명하게 알고 정확히 질문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AI가 엄청난 레버리지로 작동한다. 여기에 한동안은 분명히 갭이 존재할 거다. 추상화와 질문의 해상도에서 생기는 갭. 그리고 이 갭을 넓게 먹는 사람이 한동안은 인정받는 전문가가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개발자로 예를 들어보자. 팀장 혹은 C레벨이 “이거 이렇게 해보는 거 어때요?” 하고 아이디어 하나를 툭 던진다. 이때 진짜 잘하는 개발자는 이렇게 움직인다. 우선 거시적인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갖춘다. 비즈니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 접근 방식을 그려본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엣지 케이스는 뭐가 있을지, 실제 구현상의 리스크는 무엇인지까지 폭넓게 고려한다. 이 전체 스코프를 머릿속에 담은 상태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시키기 전에 먼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방금 말한 그 스코프들을 이미 다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스스로 꺼내는 거다. “이거 해보는 거 어때요?”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가혹하지만) 아주 주도적이고 똑똑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좀 씁쓸한 진실이 하나 붙는데, 지능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지능의 편차로 인한 능력과 보상의 격차는 앞으로 더 급진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종의 지능의 빈익빈 부익부다.

희망적인 지점도 분명히 있다. 지능에는 당연히 유전적 요소가 있지만, 학습과 호기심을 통한 지식의 꾸준한 습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지능 자체의 발달이라는 레버리지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간단히 말해서 책이든 뭐든 텍스트 많이 읽고 이해하라는 이야기다. 이걸 되게 재미없게 축약하면 계속 ‘공부’ 하라는 말이다. (주식공부 이런거 말고)

요즘 전 세계적으로 철학과 지원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있는데, 참 똑똑한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을 읽고 철학적 사유를 진지하게 해본 사람이라면 ‘철학’이라는 학문이 순수하게 얼마나 머리 아프게 뇌를 혹사하는 활동인지, 때로는 몇 줄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일종의 두뇌 성장이 분명히 체감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똑똑해져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똑똑하다는 것의 보상이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